현기증의 대표적 증상은 어지럼증이다. 솔 바스Saul Bass의 빙글빙글 도는 나선 그래픽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매들린에게 매혹되어 허덕이는 사람의 이야기가 어째서 현기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을까?
비행사들이 겪는 ‘버티고 현상‘을 첫 번째 힌트, 그리고 히치콕의 주요 테마인 — 임시로 이렇게 칭한다 — ‘허깨비’를 두 번째 힌트로 삼을 수 있다. 야간 비행 시 하늘을 바다로 바다를 하늘로 착각해 빙글빙글 돌다 추락하는 것이 버티고 현상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한편 위상이 뒤집힌 격인데 <현기증>에서는 허깨비와 실제가 역전되어 있다.
<현기증>은 '허깨비'의 여러 변주들 가운데 하나다. 쓸데없이 빙빙 돌려 말해 보자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에로스 버전, 로맨스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피닉스>는 쥬디의 이야기를 확장・변주한 작품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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