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5

영화 평론의 위상

영화 평론이 대단히 고상한 일인 것처럼 허세를 떠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요. 실제로는 그들의 일이 그렇게 대단치 않은 것이니 오히려 낮잡아 보셔도 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영화 평론은 지성 세계에서 위상이 아주 낮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평론은 해석학에 뿌리를 둔 활동입니다. 해석학은 성서해석학에서 비롯된 학문이며, 성서해석학은 성서에 대한 인문적 접근으로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를 인문학 텍스트처럼 따져 묻기 시작하면서 성서 읽기가 종교적 차원에서 학문적 차원으로 이행하는 가운데 성서해석학이 학문 분과로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서가 감히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없던 텍스트였다는 점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지성 세계에서는 이처럼 텍스트 간의 위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단상들 2025.06.21

2010년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기억에 남는 2010년대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다음과 같다. 당장 떠오르는 작품들이라 빠뜨린 작품이 분명히 두어 편 더 있을 것이다. 내가 워낙 챙겨 보지 않는 탓에 모수가 적긴 하겠지만 고 이강현 감독을 포함해 모두 신진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헤아려 봐야 할 일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 2010년대의 작품들을 추려보니 그랬다. 이 중 나 2010년대의 작품이 아니라 넣지 못한 태준식 감독의 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특성이 묻어 있으면서도 그간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든 말을 해보자면 활동가로서 예술적 도전을 하는 가운데 일어난 결과 쯤 되지 않을까. 황지은 감독의 는 초보자의 허둥거림과 작가적 절제가 혼재되어 있는 ..

단상들 2025.05.18

<쓰리 타임즈> ‘연애몽’ 편을 향한 찬사들

2023년 내러티브 기초 강의를 마쳤다. 햇수로 7년째 개설된 강의다. 매해 커리큘럼이 조금씩 개수되었지만 (2005, 허우 샤오시엔)의 ‘연애몽’ 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례 작품이다. 그동안은 ‘연애몽’ 편을 플롯 공학의 측면에서만 분석해왔지만 지난해에 요청이 있은 후부터 테마의 측면을 언급하게 되었다. 국내에 가 개봉했을 당시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연애몽’ 편에 찬사를 보냈던 걸 기억해 올해는 그때의 ‘리뷰’들을 검색해 보았다. 플롯 공학적 분석에 기반하면 작품에 관해 유의미하게 읽어볼 만한 글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상 검색해 보니 낯부끄러워서 차마 공유하기 어려운 글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두 개의 글을 추릴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이..

단상들 2023.07.07

위기의 시대에 프로파간다 혹은 포르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

를 보지 않는다. 워낙 화제다 보니 소재와 대략의 줄거리 구도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주인공 이름이 연진이라는 건 엊그제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들었다. 보지 않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면서 프로파간다거나 포르노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게 뻔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인간은 극단적이지 않지만 드라마의 인물들은 극단적이기 때문에 관중들은 드라마가 자신의 음험한 욕망을 대신해주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도 말했다. 한편 공인의 학교폭력이 드러났을 때 사회 전체가 모종의 집단 린치를 가하는 행위까지 화제가 되었다. 서구 어딘가에서 이와 관련한 기사가 난 모양이다. 그것이 마치 한국 사회만의 유별난 행태인 것처럼 서술되었다고 들었다. 짜증이 일었다. 그런 행태는 어느 사회, 어느 문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

단상들 2023.03.13

<로데오 카우보이>(2017, 클로이 자오)를 보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이 적울積鬱이 요동치는 순간. 영화관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혼났던 장면. 이후 선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극이든 다큐멘터리든 저 영화에 감흥을 느낀다는 건 어지간해서는 동화와 자기 연민에 의한 것임을. 애호가나 아마추어라고 할만한 사람들도 텍스트 분석을 할 줄 모른다. 당장 평론가들조차 분석 데이터에 기반해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드문 실정이니. 이를 테면 누군가 국수주의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텍스트로서의 기술적 면면 등을 점검한다기 보다는 그 다큐멘터리(국수주의 비판)를 챙겨 보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리는 일로 자신을 문화인, 지성인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 작품을 객관화 하는 역량을 가..

단상들 202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