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나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게 되었다. 제작 및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나 굳이 영화관에 가서 챙겨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청소년 시절과 달리 <슬램덩크>라는 콘텐츠에는 더 이상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예고편 영상을 볼 때에도 너무나 정확하게 구현되고 있는 농구 모션만 — 이것만큼은 꽤나 — 흥미로웠을 따름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펼쳐지는 송태섭과 그의 형 송준섭의 일대일 장면에서 입이 떡 벌어졌다. 내가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는 ‘농구’의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산왕 전이 시작되면서는 할 말을 잃었다. 뭉클했다. ‘농구’의 재현이. 내게는 드라마, 캐릭터, 원작의 묘미 …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공감할 수 없다. 공감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함께 슛을 던지고 농구를 좋아했던 내 친구 외에는. 송태섭이 형을 상대로 첫 골을 성공시키는 순간,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블록의 빈틈을 찾아 보드 아래 쪽을 볼 수밖에 없는 그 쇼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내게 그 쇼트로, 심지어 볼이 림으로 들어가는 건 내 시야에 없는 바로 그 감각 그리고 함께 농구를 연마할 때의 우정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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