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의 아이들>(1937), <항구의 일본 소녀들>(1933)을 보았다. 시미즈 히로시는 근래에야 이름을 알게 된 감독이다. 엊그제 알게 된 사실은 한 해에 10편을 연출할 정도로 다작을 한 감독이라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오며가며 보게 된 작품이 있지 않다면 <바람 속의 아이들>이 내가 처음 본 시미즈 히로시의 연출작일 것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흥행 기록이 얼마나 될까였다. 일본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설정・장면들로 빼곡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본 고전기의 일본 영화는 분명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일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 같은 이름이 무거운 감독들의 연출작이 아닌 고전기의 일본 영화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오즈나 겐지의 작품들과 이들의 작품들에 별다른 변별점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오즈나 겐지 같은 감독들의 차별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장르적 조건 하에서도 이들은 다른 무언가를 구축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미즈 히로시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런 까닭에 장르적 조건을 전제하지 않고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타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즈도 겐지도 소재나 이야기의 차원에서는 당대의 영화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영화예술의 방점은 소재나 이야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여러 곡해와 방언들을 낳고 있지만 그 얘긴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나아가 주제나 소재가 부각되는 작품들은 실은 선전물에 가깝다는 점도 의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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